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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하계 " 개인 건축(교육)봉사 "
- 2차 : 2016. 08. 11 (목) ~ 2016. 08. 16 (목) 에 참가하였습니다.
18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 맘입니다.
나이도 어느덧 마흔을 넘긴 앞만 보고 달려온 극히 평범한 중년 여성이지요.
올해 좋은 기회로 인해 반년간 휴직기를 내고, 이것 저것 그동안 해보고 싶었는데 못해본 것들을 해보며 날마다 천국에서 살아가던 중에 해외봉사를 떠올렸답니다.
왜?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었지만 여러핑계로 해보지 못했던 것들 중의 하나였으니까요
그중의 8할은 두려움? 단체로 가면 그냥 묻어갈 수 있겠지만 혼자서는 좀 많이 망설여지는 일이었거든요. 저한테는...
그런데 단체가 아닌 개인 홀로 신청하는게 생각처럼 그리 쉽진 않더군요.
처음엔 1365 봉사 사이트에서 말레이지아 해외봉사 지원자를 모집한다기에 바로 신청했지요. 단체로 움직인다고 해서요. 그런데 떠날 날짜가 한달 전으로 다가왔을때, 파리에서 IS테러가 터지는 바람에 최소하는 신청자가 속출하여 결국 인원부족으로 계획 자체가 취소되었답니다.
'아, 이번에도 해외봉사는 못가는건가?"
낙담하다가 우연찮게 '캄보프렌드'라는 NGO단체를 알게 되어 신청하게 되었어요. 물론 혼자서 그곳까지 날아가야 한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그냥 모른척 했어요. 난 강한 엄마이니까,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일 하나는 하고 죽어야 하니까요.
캄보디아 현지 시각으로 새벽 2시경 시엠립 공항에 도착하니 동행인이 나 포함 5명, 숙소에 미리 도착한 4명, 모두 9명이었어요.
다음날 아침, 모두 모이니 직장인 2명, 대학생 4명, 여고생 3명, 17~28세까지 나와는 무려 2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젊은 청춘들이었어요. 이렇게 젊은 청춘들이 좋은 일도 하는구나 싶어 대견스럽고 한참 늦게 온 자신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지요.
한 팀이 된 우리는 6박8일 동안 오전에는 숙소에서 50분 가량 떨어져 있는 '뉴 클렌 트마이 초등학교'에서 교육봉사를 하고, 오후엔 형편이 어려운 현지인 집을 지어 기증하는 건축 봉사를 하였답니다. 현지인은 새집을 기증받기 위해 선정되고 1년정도를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고 하더군요. 한채 짓는데 일주일이 걸렸으며 원화로 200~3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합니다.
날씨가 습하고 더운데다가 한참 해가 뜨거울때, 땡볕에서 흙을 파고 나르고 벽면을 세우고 나무를 붙이고 페이트칠을 하니 땀은 비오듯하고, 숨은 턱턱 막혔지만 내안의 번뇌와 시름도 함께 사라지는 묘한 쾌감을 느꼈답니다.
삶의 중간 쯤에서 다시 인생의 숲속에 갇힌 듯한 막막함에, 가던 길을 계속 가도 좋을지 갑자기 생긴 궁금증으로, 앞으로 갈수도 뒤돌아 갈수도 없어 그저 허공만 쳐다 보았는데, 잠시 모든 것이 절로 내려지더군요, 무념무상이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캄보디아의 아이들은 순수 그 자체였어요. 아이들이야 원래 순수하지만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아직 아무런 채색도 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이들 모습이랄까요?
색종이 한장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하며, 공을 차고 줄넘기를 하며 신발을 신지 않고 운동장을 하루종일 누비고 다닌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미리 챙겨온 색종이와 풍선들을 이용해 여러가지 종이접기와 숫자공부, 한국어, 영어등을 함께 공부하며 야외에서도 실컷 뛰어 놀았답니다.
첨엔 민폐가 되지 않을까 조바심내며 더운 날씨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에 더운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지요.
하지만 한두번 시행착오 끝에 나중엔 그냥 어울려 노는 것이 아이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겠다 싶더군요. 부모가 아이들과 그냥 놀아주듯이요.
아이들은 우리를 '티쳐', '티쳐' 라며 큰소리로 부르며 아주 잘 따라주었고, 비록 차림새나 위생관념은 우리나라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지만 그 초롱초롱한 눈빛과 웃음소리는 어느 나라 아이들보다 훨씬 영롱하고 유쾌했답니다. 아직도 그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 정도니까요.
함께 지원했던 젊은 청춘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나의 부모 세대도 저런 모습으로 자라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어릴때만 해도 집에 수도가 없고 펌프기로 물을 길어 먹었으니까요. 내 부모 세대도 바로 저렇게 자라나 지금의 우리나라를 일으킨 일꾼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더군요. 분명 이 아이들도 씩씩하게 자라 지금은 가난한 캄보디아를 더욱 부강한 나라로 성장시켜 주리라 기대해 봅니다.
이번 해외봉사에서 얻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건축봉사를 하면서 일상의 근심, 걱정, 번뇌를 잠시 온전하게 내려 놓을 수 있었다는 것과 캄보디아의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그들에게 준 것보다 그들이 나에게 준 희망과 사랑 그리고 따뜻한 정이 훨씬 더 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내나라, 내가족, 나만 바라보던 시선을 이제부터는 우리로, 이웃으로, 지구촌으로 돌려 함께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참고로 일요일엔 앙코르 톰, 바이욘사원, 타프놈사원, 앙코르와트 등 문화유적지 탐방을 하게 되는데 봉사도 하고 투어까지 하니 일석이조겠죠! 감동은 각자의 몫이고요.
숙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에어컨도 쌩쌩 나오고, 따뜻한 물도 콸콸, 모기는 저녁때만 안 나가면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드라이기도 없다더니 욕실에 얌전히 있더군요.
아침식사는 숙소 식당에서 설렁탕이랑 과일, 빵, 라면, 후라이도 가능하며 점심엔 또다른 식당서 한식 위주로 나오는데 맛도 괜찮고 시원하며 특히 대형 콜라, 환타 맛이 끝내준답니다. 저녁식사는 시내 나가서 원하는 것으로 사 먹는데 맥주가 물보다 싸서 제일 행복했답니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람이겠지요! 냉정하다고 말하시지만 절대 안 냉정하신 대표님, 친절한 장난꾸러기 현지 스텝분들, 그리고 내가 만난 최고 중의 최고 우리 팀원들!
애정이 넘치다 못해 철철 흘리고 다니던 젊은 청춘들, 게중에 한 청춘이 카톡으로 다시 떠날 봉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도 불사하겠다는 말이 후기를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답니다.
만의 하나 이 후기가 당첨된다면 두번째 봉사를 위해 떠날 청춘에게 바치고 싶네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한 봉사 감동으로 행복한 사람으로서 만약 해외봉사를 망설이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번 도전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자신의 두려움과 싸우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과 싸우고나면 나도 살면서 하나쯤 소중한 일을 했다는 자신감이 생기리라 생각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캄보프렌드 숙소입니다.
아이들과 단체사진 찍었습니다.
초롱초롱한 아이들^^

뒤에 보이는 주택이 저희가 만든 집이랍니다. 워메 이쁜것!
앙코르와트 3층서 내려다 본 전망입니다.
바이욘사원에서 다함께 뛰어올라 봅시다! 그대들의 남은 삶도 이렇게 높게 올라서길 바라는 마음과 행복한 청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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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하계 " 개인 건축(교육)봉사 "

아이들과 단체사진 찍었습니다.
초롱초롱한 아이들^^

앙코르와트 3층서 내려다 본 전망입니다.
바이욘사원에서 다함께 뛰어올라 봅시다! 그대들의 남은 삶도 이렇게 높게 올라서길 바라는 마음과 행복한 청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습니다.
- 2차 : 2016. 08. 11 (목) ~ 2016. 08. 16 (목) 에 참가하였습니다.
18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 맘입니다.
나이도 어느덧 마흔을 넘긴 앞만 보고 달려온 극히 평범한 중년 여성이지요.
올해 좋은 기회로 인해 반년간 휴직기를 내고, 이것 저것 그동안 해보고 싶었는데 못해본 것들을 해보며 날마다 천국에서 살아가던 중에 해외봉사를 떠올렸답니다.
왜?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었지만 여러핑계로 해보지 못했던 것들 중의 하나였으니까요
그중의 8할은 두려움? 단체로 가면 그냥 묻어갈 수 있겠지만 혼자서는 좀 많이 망설여지는 일이었거든요. 저한테는...
그런데 단체가 아닌 개인 홀로 신청하는게 생각처럼 그리 쉽진 않더군요.
처음엔 1365 봉사 사이트에서 말레이지아 해외봉사 지원자를 모집한다기에 바로 신청했지요. 단체로 움직인다고 해서요. 그런데 떠날 날짜가 한달 전으로 다가왔을때, 파리에서 IS테러가 터지는 바람에 최소하는 신청자가 속출하여 결국 인원부족으로 계획 자체가 취소되었답니다.
'아, 이번에도 해외봉사는 못가는건가?"
낙담하다가 우연찮게 '캄보프렌드'라는 NGO단체를 알게 되어 신청하게 되었어요. 물론 혼자서 그곳까지 날아가야 한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그냥 모른척 했어요. 난 강한 엄마이니까,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일 하나는 하고 죽어야 하니까요.
캄보디아 현지 시각으로 새벽 2시경 시엠립 공항에 도착하니 동행인이 나 포함 5명, 숙소에 미리 도착한 4명, 모두 9명이었어요.
다음날 아침, 모두 모이니 직장인 2명, 대학생 4명, 여고생 3명, 17~28세까지 나와는 무려 2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젊은 청춘들이었어요. 이렇게 젊은 청춘들이 좋은 일도 하는구나 싶어 대견스럽고 한참 늦게 온 자신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지요.
한 팀이 된 우리는 6박8일 동안 오전에는 숙소에서 50분 가량 떨어져 있는 '뉴 클렌 트마이 초등학교'에서 교육봉사를 하고, 오후엔 형편이 어려운 현지인 집을 지어 기증하는 건축 봉사를 하였답니다. 현지인은 새집을 기증받기 위해 선정되고 1년정도를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고 하더군요. 한채 짓는데 일주일이 걸렸으며 원화로 200~3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합니다.
날씨가 습하고 더운데다가 한참 해가 뜨거울때, 땡볕에서 흙을 파고 나르고 벽면을 세우고 나무를 붙이고 페이트칠을 하니 땀은 비오듯하고, 숨은 턱턱 막혔지만 내안의 번뇌와 시름도 함께 사라지는 묘한 쾌감을 느꼈답니다.
삶의 중간 쯤에서 다시 인생의 숲속에 갇힌 듯한 막막함에, 가던 길을 계속 가도 좋을지 갑자기 생긴 궁금증으로, 앞으로 갈수도 뒤돌아 갈수도 없어 그저 허공만 쳐다 보았는데, 잠시 모든 것이 절로 내려지더군요, 무념무상이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캄보디아의 아이들은 순수 그 자체였어요. 아이들이야 원래 순수하지만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아직 아무런 채색도 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이들 모습이랄까요?
색종이 한장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하며, 공을 차고 줄넘기를 하며 신발을 신지 않고 운동장을 하루종일 누비고 다닌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미리 챙겨온 색종이와 풍선들을 이용해 여러가지 종이접기와 숫자공부, 한국어, 영어등을 함께 공부하며 야외에서도 실컷 뛰어 놀았답니다.
첨엔 민폐가 되지 않을까 조바심내며 더운 날씨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에 더운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지요.
하지만 한두번 시행착오 끝에 나중엔 그냥 어울려 노는 것이 아이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겠다 싶더군요. 부모가 아이들과 그냥 놀아주듯이요.
아이들은 우리를 '티쳐', '티쳐' 라며 큰소리로 부르며 아주 잘 따라주었고, 비록 차림새나 위생관념은 우리나라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지만 그 초롱초롱한 눈빛과 웃음소리는 어느 나라 아이들보다 훨씬 영롱하고 유쾌했답니다. 아직도 그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 정도니까요.
함께 지원했던 젊은 청춘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나의 부모 세대도 저런 모습으로 자라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어릴때만 해도 집에 수도가 없고 펌프기로 물을 길어 먹었으니까요. 내 부모 세대도 바로 저렇게 자라나 지금의 우리나라를 일으킨 일꾼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더군요. 분명 이 아이들도 씩씩하게 자라 지금은 가난한 캄보디아를 더욱 부강한 나라로 성장시켜 주리라 기대해 봅니다.
이번 해외봉사에서 얻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건축봉사를 하면서 일상의 근심, 걱정, 번뇌를 잠시 온전하게 내려 놓을 수 있었다는 것과 캄보디아의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그들에게 준 것보다 그들이 나에게 준 희망과 사랑 그리고 따뜻한 정이 훨씬 더 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내나라, 내가족, 나만 바라보던 시선을 이제부터는 우리로, 이웃으로, 지구촌으로 돌려 함께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참고로 일요일엔 앙코르 톰, 바이욘사원, 타프놈사원, 앙코르와트 등 문화유적지 탐방을 하게 되는데 봉사도 하고 투어까지 하니 일석이조겠죠! 감동은 각자의 몫이고요.
숙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에어컨도 쌩쌩 나오고, 따뜻한 물도 콸콸, 모기는 저녁때만 안 나가면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드라이기도 없다더니 욕실에 얌전히 있더군요.
아침식사는 숙소 식당에서 설렁탕이랑 과일, 빵, 라면, 후라이도 가능하며 점심엔 또다른 식당서 한식 위주로 나오는데 맛도 괜찮고 시원하며 특히 대형 콜라, 환타 맛이 끝내준답니다. 저녁식사는 시내 나가서 원하는 것으로 사 먹는데 맥주가 물보다 싸서 제일 행복했답니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람이겠지요! 냉정하다고 말하시지만 절대 안 냉정하신 대표님, 친절한 장난꾸러기 현지 스텝분들, 그리고 내가 만난 최고 중의 최고 우리 팀원들!
애정이 넘치다 못해 철철 흘리고 다니던 젊은 청춘들, 게중에 한 청춘이 카톡으로 다시 떠날 봉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도 불사하겠다는 말이 후기를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답니다.
만의 하나 이 후기가 당첨된다면 두번째 봉사를 위해 떠날 청춘에게 바치고 싶네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한 봉사 감동으로 행복한 사람으로서 만약 해외봉사를 망설이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번 도전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자신의 두려움과 싸우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과 싸우고나면 나도 살면서 하나쯤 소중한 일을 했다는 자신감이 생기리라 생각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캄보프렌드 숙소입니다.
뒤에 보이는 주택이 저희가 만든 집이랍니다. 워메 이쁜것!